미쯔페라몬의 단 장로와 달리아 사모의 이방인 형제 자매들에게 쓰는 편지
메시아닉 유대인이란?번역: 박에스라
우리의 유대인이 아닌 형제/자매들에게 주는 격려의 메시지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신 10:16)
우리가 24년전에 처음 믿기 시작했을 때, 우리에게 일어난 놀라운 것들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유대인이 아닌 자들(the Non-Jewish)을 향한 사랑을 주신 것과 유대인이 아닌 믿는 자들이 우리의 믿음의 형제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유대인이 아닌 형제들 중 그들 자신이 유대인 신자들(the Jewish believers-예수를 믿는 유대인들)앞에서 열등하게 느낀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듣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심지어 얄무크(yalmukes-역주: kippah키파라고도 하는 유대인들이 머리에 쓰는 대체로 동그란 모자), 기도 숄(탈리트)과 옷술(찌찌트)와 같은 외관상으로 특징지어지는 것을 씀으로써 유대인처럼 보이길 원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것이 외모가 아닌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고 이해하고 확신합니다.
신약에는 우리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믿음안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자세한 묘사가 나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7:17-19에 쓰여 있기를
"17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18 할례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토라(율법-모세오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음에 할례를 받는 것에 대해 상기시키시고 있습니다. 신명기에서는 주께서 이스라엘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예슈아(예수님)를 믿음으로써 이스라엘의 백성들 안으로 들어온 그 유대인이 아닌 이들은 같은 것을 권면받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렘 17:9)
이 토라(모세오경)와 선지서 그리고 신약에 있는 성경본문들은 우리에게 정말 하나님의 눈에 중요한 것 그것은 마음의 할례임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마음으로부터 사고방식이 나오고 사고하는 대로 행하기 때문입니다(마 15:19)
신약은 여섯 곳에서 이 부분에 대해 상세히 논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6절에서 바울은 성령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갈라디아서 6장 15절에서는 바울은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a new creation)만이 중요하니라."
-로마서 2장 28-29절에 쓰여있기를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골로새서 2장 11절에 쓰여있기를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골로새서 3장 10-11절에 쓰여있기를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그리고 에베소서 2장 11-13절에 쓰여있기를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영적인 언약)
우리는 언제나 새 언약이 마음에 하는 영적인 언약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렘 31:33) 그리고 그러므로 이방인들은 유대인처럼 처신하고 옷입고 살 필요가 없습니다.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을 모방하거나 그들처럼 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슈아(예수님)의 피로써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미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로마서 11장 17절에서 처럼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이 되었습니다.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예슈아(예수님)는 그 나무의 뿌리이시며 또한 우리 믿음의 뿌리이시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계시록 22장 16절에서 그 자신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우리, 유대인과, 또한 이방인이 믿음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우리 믿음의 뿌리를 돌아볼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슈아(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뿌리 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슈아(예수님)는 또한 우리 믿음의 건축물의 모퉁이돌이십니다.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19-22)
그러므로 만일 ,유대인이 아닌, 당신이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이 되었다면 그리고 그 건축물의 모퉁이돌에 연결되었다면, 당신은 그 건물의 부분입니다. 우리,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는 그 건물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주 안에서 성전으로 지어지기 까지 함께 수고합니다. 그리고 우리, 믿는 유대인들은, 자랑할 필요도, 유대인이 아닌 믿는 자가 유대인처럼 보이기 위해 우리를 모방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도록 외적인 특징(유대인스러운)을 사용함으로써 유대인이 됨을 미화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갈라디아서 3장 26-29에 쓰여있는대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그러므로, 믿는 자들인, 유대인과 이방인, 우리 모두는 -구약에 의하면 "많은 민족의 조상"(역, 롬 4:17-18)이며 신약에 의하면 "믿음의 아버지"(역, 롬 4:16)인-아브라함의 자손들입니다. 또한 유대인이 아닌 이들도 마음에 유대인(Jews in the heart)이라고 불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롬 9:6-8)
그러므로 믿는 이방인들(고임 Goyim)은 또한 믿는 유대인들과 함께 약속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우리-그 선택된 백성과 영적인 이스라엘이 같이- 하나님과 함께 합니다. 하나님께 찬양을!
단과 달리아 알론
미쯔페 라몬에서
*역자 설명: 예수님의 히브리어 이름인 예슈아는 구원이라는 뜻으로 우리가 잘아는 여호수아(예호슈아)의 축약어이기도 합니다. 일반 유대인들은 예쓔라고 부르는데 부정적인 어감이 있습니다.( 어떤 랍비는 '그의 이름이 도말될 지어다'라는 문장의 축약어로 해설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믿는 유대인인 메시아닉 유대인(예후디 메쉬힘)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예슈아로 부릅니다.